교육칼럼(FM통신)
아빠들에게
요즘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가족을 위하여 자신들의 삶을 바친 아버님들의 삶을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아빠들과 비교할 때 이 분들은 자녀와 소통하는 부분은 모두 어머니에게 떠맡기고 오로지 가족의 생존을 위해 소처럼 일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희생적인 아버지상이 있는가 하면, 가부장(家父長)적인 아버지의 전형으로 한량, 풍운아, 혹은 샌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세상물정을 모르고 버럭 호통이나 치던 아버지, 양반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집안의 모든 현실적인 일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글월만 읽어대던 답답한 아버지.... 이러한 아버지상은 이제 영화의 역할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묵은 모습이 아닐까요?
서울 가정법원이 실제 이혼의 위기에 놓인 가정의 자녀들에게 ‘부모가 이혼하면 누구와 살 것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집계한 결과 “아빠와 살고 싶다”는 자녀가 뜻밖에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중학생 이상 30%의 아이들이 아빠를 양육자로 선택했습니다.
지난해 한 디지털 콘텐츠 업체가 SNS에서 가족관련 언급횟수를 들여다봤더니 ‘아빠’가 ‘엄마’보다 25%가량 많았습니다. 반면 ‘무섭다’는 말은 엄마와 관련한 문장에서 열배 넘게 등장했습니다. 날마다 ‘공부해라’ ‘학원가라’는 잔소리로 아이들을 닦달하는 엄마보다는 친구처럼 대해주는 아빠가 더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자녀 교육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극한 모성애와 결합된 자식사랑이 근시안적인 경쟁 대열로 자녀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엄마와 아빠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이야기 한다고 기분 나쁘실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전부 다는 그렇지 않으니 이해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비교하고 질투하는 감정에 민감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남과 비교당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 아이가 다른 애들보다 뒤쳐질까봐 불안해하고 강박증에 시달리는 엄마보다는 자녀들의 미래를 멀리 바라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엄마보다는 아빠가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구 같은 아빠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는 요즈음의 아빠들도 세상의 소리에 부화뇌동하는 태도로 자녀교육에 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공부에 대한 당신들의 편견을 깨뜨려야 합니다. (공부에 대한 편견을 예로 들자면, 1.성적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지능이다. 2. 선행학습을 할수록 성적향상에 유리하다. 3. 하기 싫어도 꾹 참고 하면 성적은 오르게 마련이다. 4.아이가 공부를 안 하면 야단쳐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 5. 성적이 떨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정신 차리고 공부할 것이다. 6. 성적이 오르면 원하는 것을 사주겠다고 약속하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등 등)
그래서 젊은 아빠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가 요즈음 공감하며 읽은 책 한권의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김주환 교수가 쓴 ‘그릿’이라는 책 입니다. 사실 김주환 교수의 딸은 중학교 때 전교 290명 중 230등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몇 주씩 학교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배우려는 속도가 느려 학습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딸을 근시안적인 잣대로 압박하지 않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주며 많은 소통을 나누었던 아빠로서의 김교수는 인간 성취력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인 ‘그릿(우리말로 표현하면 근성,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내는 집념)에 주목, 연구를 시작했고 당시 고등학생인 딸에게 그릿을 가르친 결과 놀라운 성취력을 이끌어 냈습니다. 김교수의 딸은 거짓말처럼 고3때 내신1.8등급, 수능 다섯 과목 만점으로 서울대 경영학과에 수시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의 심정은 여러분에게 ‘그릿’이라는 책을 사서 꼭 한번 읽으세요 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싶을 뿐이랍니다.
저자가 강조한 것 중에서 저도 공감하며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몇 가지만 간략하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공부의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교육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많이 시킨다고, 막말로 극성을 부린다고 아이의 성적이 오를 거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입니다. 타율적인 압박 즉 부모의 욕심으로, 부모의 손에 이끌려서 하는 공부는 길게는 중1,2 짧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그 수명을 다합니다. 김주환 교수나 이 글을 쓰는 저나, 부모의 극성 때문에 추락해버린 영재들의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누군가 공부하라고 시키는 순간,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빠지는 게임을 학교 교과목으로 정하고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긴다면 과연 아이들이 게임을 그렇게 좋아할 것인가라고 묻는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합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자기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게임의 매력인 것입니다. 게임의 세계에는 타율이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정해서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며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을 찾도록,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을 보내는 것이 아빠의 몫이며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비교하기를 시작할 것이고, 내 아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한없이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합니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불안감에 아빠들이 동조해서는 안됩니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여러 학원을 정해주고 공부 계획과 학교 시험 준비까지 지극정성으로 해준 아이들이 어릴 때는 대체로 공부 잘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수명이 짧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율적인 공부 습관이 과연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질까요?
둘째, 자기 조절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스트레스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동 말고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젊은 아빠들께서는 시간을 내어 자녀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지구력 있게 해낼 수 있는 근력(그릿)을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슬럼프를 부정적이고 엉뚱한 방법으로 풀려고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것입니다. 아빠와 하는 운동이 정말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고 자녀들이 생각한다면, 자녀들이 운동을 즐기면서 육체적 정신적 휴식을 얻을 수 있다면, 자녀 교육의 절반은 성공을 얻은 셈입니다.
셋째 부모의 잔소리와 꾸지람은 아이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학습 능력을 현저하게 저하시킵니다. 공부를 할 때 긍정적이고 안정된 정서가 지능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부정적 정서 유발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성적 때문에 부모로부터 잔소리, 꾸지람을 듣고 자란 아이는 시험 불안증이나 자신감 결여, 의욕상실 등을 겪으며 공부를 더 못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젊은 아빠들은 자녀들을 칭찬해주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너는 머리가 참 좋으니까~’라는 식의 칭찬은 금물입니다. 그리고 진심이 섞이지 않은 과장된 칭찬도 피하시고, 아이가 노력하는 과정 자체에 대하여, 그 노력에 따라 조금이라도 성취를 이룬 것에 대하여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십시오.
학생들의 성적 차이는 지능으로는 약 25%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 75%는 동기부여, 끈기, 자기조절력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김주환 교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연구에서도 지능보다는 공부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자신감이 학생의 성적을 훨씬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요인임을 밝혀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떠한 경우라도 부모의 따뜻한 격려와 긍정적 지지를 받고 자란 아이는 끈질긴 집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몫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지금 내 아이가 부모님의 기대에 비해 한없이 모자라 보이십니까? 그렇다고 야단치고 잔소리를 하지 말고, 기다려주고 기도해주고 부모님의 생각을 바꾸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주환 교수가 실제로 딸에게 적용했던 생활습관을 소개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긍정적 정서를 향상시키기 위해 늘 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쳤고 밤마다 감사 일기를 쓰도록 권유했다고 합니다. 또한 집중력과 평안한 마음을 길러주기 위해서 매일 밤 딸과 마주앉아 명상을 했다고 합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빠가 있었기에 기적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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